
“나 우울해서 빵 샀어.” 최근 SNS에서 자주 보이는 이 표현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상징한다. 특별한 필요가 없어도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 ‘필코노미(Feel+Economy)’가 확산하며 일상 속 작은 만족을 위한 소비가 늘고 있다. 호텔급 수건, 고급 양말, 프리미엄 베이커리 등 부담 없는 가격대의 ‘기분 충전’ 상품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트렌드코리아 2026’에서 필코노미를 내년 주목할 소비 키워드로 제시했다. 필코노미는 소비자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진단하고 이를 더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경제 현상이다. 특정 목적이나 욕구 기반의 소비가 아니라, 이유 없이 생기는 기분 그 자체가 소비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 특징이다.
유통업계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감정적 경험을 강화한 마케팅을 확대하고 있다. 식음료, 독서, 공연 등 생활 밀착형 브랜드를 중심으로 즉각적 심리 보상을 제공하는 제품과 공간 구성이 늘고 있으며, 브랜드 스토리텔링과 감각적 경험 디자인을 통해 소비자가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을 체감하도록 하는 전략이 잇따르고 있다.

▲ 할리스 마시코트 '할리베어' 대형조형물 설치모습 ▲ CU편의점x교보생명 협업상품 '문장 한입 팝콘'과 굿즈
최근 할리스는 마스코트 ‘할리베어’를 중심으로 감정 몰입형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합정역점을 ‘도시형 감성 공간’으로 리뉴얼해 대형 조형물을 설치하고, 부산·대전 지역 매장에는 지역 특성을 반영한 테마 포토존을 마련했다. 단순 방문을 넘어 감정적인 즐거움과 참여의 재미를 제공해 소비자가 브랜드와 감정을 공유하도록 하는 전략이다. 편의점 CU는 교보생명과 협업해 독서 감성을 담은 ‘문장 한입 팝콘’을 출시했다. 제품에는 도서 속 문장을 담은 책갈피가 랜덤으로 동봉되어 소비자가 간식과 함께 위로의 문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필코노미 확산 배경으로 비대면 환경에 익숙한 MZ 세대의 감정 표현 방식 변화를 지목한다. 팬데믹 이후 직접적인 교류가 줄며 기분을 말로 설명하기보다 소비로 표현하는 경향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가격·기능 중심의 소비에서 ‘내 기분을 이해하고 더 좋게 만드는 상품’을 찾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감정을 기반으로 한 추천 시스템과 유연한 조직 문화 등 사회 전반이 감정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이혜원 연구위원은 “기능과 가격이 상향 평준화된 상황에서 소비자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개선해주는 상품에 가치를 둔다”며 “앞으로 기업의 경쟁력은 소비자의 기분을 더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만드는 능력에 달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e마케팅저널 이채영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