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나 유통을 기반으로 하는 B2B(기업 간 거래) 현장에서 견적을 산출하는 일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골칫거리인 업무다. "이 도면대로 만들면 단가가 얼마나 될까요?"라며 하루에도 수십 건씩 팩스나 이메일로 쏟아지는 문의를 처리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생산 관리나 영업 활동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특히 50명 미만의 소규모 기업에서는 복잡한 도면이나 사양서를 해독하고 과거의 단가표를 뒤져 정확한 마진을 계산할 수 있는 인력이 극소수의 숙련자에게 한정되어 있다. 이들이 외근을 나가거나 다른 급한 업무에 매달려 견적 회신이 며칠씩 늦어지면, 성질 급한 거래처는 이미 다른 경쟁사와 계약을 맺고 떠나버린다. 수작업과 특정 인력의 기억력에 의존하는 느린 견적 산출이 회사의 귀중한 매출 기회를 눈앞에서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병목 현상을 해결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AX(AI 전환)에 있다. 이는 복잡한 수식을 외우고 있는 값비싼 전사적 자원 관리(ERP) 프로그램을 통째로 뜯어고치라는 것이 아니다. 과거 10년 치의 단가표와 거래 내역을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는 똑똑하고 손이 빠른 막내 직원을 고용하는 것과 같다.
과거에는 사람이 일일이 엑셀의 수많은 탭을 오가며 부품 원가를 찾아 더하고 양식에 맞춰 문서를 꾸며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문서를 인식하는 시각 지능과 거대 언어 모델(LLM)을 결합하여, 고객이 보낸 복잡한 PDF 요청서의 핵심 수치를 AI가 스스로 읽어내고 기존 단가 데이터와 대조해 순식간에 견적 초안을 만들어낸다.
자본과 IT 전담 부서가 없는 영세한 현장에서는 시중의 무료 또는 구독형 AI 챗봇을 활용해 당장 가벼운 자동화를 시도할 수 있다. 챗GPT(ChatGPT)나 클로드(Claude) 같은 AI 도구에 회사의 최신 원자재 단가표와 가공비 산정 기준을 엑셀 파일 형태로 미리 업로드해 둔다. 그런 다음 고객으로부터 받은 문의 메일이나 텍스트화된 사양서를 올리고 "이 사양을 충족하기 위한 부품별 원가를 우리 단가표 기준으로 계산하고, 마진율 15%를 더해 표 형태의 견적서로 작성해라"라고 명확한 프롬프트(명령어)를 입력한다. 단 몇 초 만에 AI는 흩어진 정보를 조합하여 꽤 논리적이고 깔끔한 형태의 견적서 초안을 화면에 띄워준다. 사람은 이 초안을 바탕으로 최종 검토만 진행하면 되므로, 견적 회신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AI가 만들어낸 견적서를 맹신하고 그대로 고객에게 전송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AI는 복잡한 사양의 뉘앙스를 잘못 해석하거나, 단가표에 없는 특수 자재의 가격을 그럴싸하게 지어내는 환각 현상(할루시네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AI는 어디까지나 훌륭한 초안 작성자일 뿐이며, 최종 숫자의 정확성과 기술적 타당성은 반드시 숙련된 실무자의 눈으로 한 번 더 확인하고 엑셀에서 최종 보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처음에는 AI에게 단가 기준을 완벽하게 학습시키고 프롬프트를 다듬는 과정이 직접 엑셀에 입력하는 것보다 번거롭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지루하고 고단한 초기 세팅을 감내해야만 비로소 강력한 AX 무기를 얻게 된다.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 액션 아이템은, 가장 자주 들어오는 단순한 형태의 견적 문의 한 건을 골라 그 사양서와 회사의 기본 단가표를 AI에 넣고 초안을 뽑아보는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다.
[※ 칼럼의 그림 및 도표는 AI 활용하여 작성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