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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인 사이버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펜과 종이를 선택한 100여 개 병원의 사투

 

병원들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잇따라 걸려왔습니다. 범죄자들이 대규모 해킹을 통해 컴퓨터 네트워크를 감염시키면서 수많은 환자의 목숨이 위험에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루마니아 국립사이버보안센터(DNSC, National Cyber Security Directorate)는 해커들이 널리 쓰이는 의료 소프트웨어를 통해 전국으로 확산하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이버 보안 책임자인 단 침페안(Dan Cimpean)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했고, 결국 전국 100여 개가 넘는 병원에 즉시 인터넷 연결을 끊으라는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2024년 2월 루마니아 병원들을 겨냥한 이 사이버 공격은 전 세계 의료 시스템을 목표로 한 역대 최악의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나, 이러한 사건은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의료 분야가 현재 국가 핵심 기반 시설 중 가장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 영역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루마니아 정부가 100개 병원의 인터넷을 차단한 조치는 해커들의 움직임을 즉각 차단하고, 공격의 피해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차단은 연결된 모든 의료 기기, 이메일, 웹 브라우저를 사용할 수 없음을 의미했습니다. 정보기술(IT) 팀들이 복구를 위해 사투를 벌이고 국립 사이버 대응센터가 해커들의 침입 경로와 차단 방법을 찾는 동안,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은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펜과 종이를 들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업무를 전환해야 했습니다. 2024년 2월 10일부터 나흘간 이어진 이들의 신속한 대응과 대처 능력은 mass 해킹에 직면한 전 세계 재난 기획자들에게 중요한 모범 사례가 되었습니다.

 

부쿠레슈티(Bucharest)에서 동북쪽으로 120km 떨어진 부저우 병원(Buzău Hospital)의 외과의사 오아나 고이데스쿠(Oana Goidescu)는 부쿠레슈티 소재의 소프트웨어 기업 RSC가 브리칭(breach, 침해)당해 의료 시스템인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가 해킹되었다는 경보를 받았습니다. 히포크라테스는 환자 입원부터 급여 관리, 약국 물류, 검사 결과 확인까지 모든 것을 관리하는 핵심 시스템이었습니다. 사이버 공격자들은 '백마이데이터(BackMyData)'라는 랜섬웨어(ransomware, 시스템을 잠그고 금전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를 심어 파일들을 무작위 암호로 가두고 비트코인(bitcoin)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부쿠레슈티 북서쪽에 위치한 피테슈티 아동병원(Pitești children's hospital)에서 일요일 아침 처음으로 오류를 감지했고, 월요일 새벽에는 이미 수많은 병원에서 히포크라테스 시스템이 마비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오프라인 상태가 된 병원들과 사이버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사와 긴밀히 협력해 감염된 시스템을 파악하고 해커를 쫓아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부쿠레슈티 카롤 다빌라 병원(Carol Davila Hospital)의 블라드 파이치(Vlad Paic)를 비롯한 의사들은 시스템이 쉽게 복구되지 않을 것을 직시하고 모든 환자를 오프라인으로 등록하는 임시 방편을 마련했습니다. 연구실에 검사 결과를 종이로 달라고 요청하고 엑셀(Excel) 등의 오프라인 도구를 활용하여 진료 공백을 막았습니다. 일부 의사들은 루마니아가 디지털 시스템으로 전환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아날로그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수월했다고 전했습니다.

 

사이버 수사대원들이 밤샘 작업을 벌인 끝에 총 26개 병원이 백마이데이터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튿날 감염되지 않은 병원들은 추가적인 보안 조치를 적용한 뒤 다시 온라인 상태로 복귀했습니다. 국립사이버보안센터(DNSC)는 언론을 활용해 병원 및 대중과 소통한 것이 이번 작전의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긴급한 상황이 아니면 병원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대중에게 호소했으나, 대기실은 여전히 환자들로 붐볐고 일부 좌절한 환자들은 의료진에게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병원들이 해커와 접촉하거나 몸값을 지불해서는 안 된다는 핵심 메시지도 강력하게 전달되었습니다.

 

해커들은 16만 유로(한화 약 2억 4,000만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요구했으나, 루마니아 정부는 이를 절대 지급하지 않기로 국가적 결정을 내렸습니다. 오프라인 상태로 남은 병원의 IT 팀들은 백업 데이터를 통해 시스템을 복구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다행히 대부분의 병원이 비교적 최신 백업 복사본을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복구 속도를 높일 수 있었으며, 이는 정기적인 백업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핵심 교훈이 되었습니다. 결국 5일 이내에 대부분의 병원이 온라인으로 돌아와 정상 운영을 재개했으며, 다행히 이로 인한 사망자나 중대한 환자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전 중에 종이에 기록된 모든 신규 정보를 다시 컴퓨터 시스템에 입력하는 데는 수 주가 더 걸렸고, 일부 데이터는 영구적으로 유실되었습니다.

 

경찰은 해킹 배후에 대한 구체적인 수사 내용을 함구하고 있으나, 지난해 백마이데이터와 연계된 랜섬웨어 조직의 웹사이트가 국제 공조 수사로 폐쇄된 바 있습니다. 당시 서방 법집행기관과 협조하지 않는 러시아 영토 밖에서 러시아인 4명이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침페안 센터장은 이러한 공격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기술이 발전하고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사이버 위험성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혈액 검사 업체가 해킹당해 런던의 약 12개 의료 센터가 영향을 받았고, 이것이 환자의 사망으로 이어졌음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이는 사이버 공격과 환자의 사망이 공식적으로 연관된 첫 사례였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체인지 헬스케어(Change Healthcare)가 해킹되어 대규모 혼란이 발생하자 해당 기업은 해커들에게 2,200만 달러(한화 약 290억 원)의 몸값을 지불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또 다른 미국 의료 서비스 제공업체인 어센션(Ascension) 역시 해킹 공격을 받아 혼란을 겪었습니다. 부쿠레슈티의 사이버 보안 기업 비트디펜더(Bitdefender)의 알리나 버즈거(Alina Bîzgă)는 병원이 다루는 서비스가 치명적인 만큼, 범죄자들은 혼란이 커질수록 자신들이 몸값을 받아낼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믿기 때문에 병원을 매력적인 표적으로 삼는다고 분석했습니다.

 

 

 

*기사에 삽입된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하였습니다.

한국e마케팅저널 김수연 기자 |